수치의 자리에 쓰신 하나님의 이름
- rosehillfgc
- 4월 27일
- 2분 분량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옵니다. 유대인에게 족보는 명예의 문서입니다. 그런데 6절을 읽다가 우리는 멈추게 됩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하나님은 왜 죄의 이야기를, 수치의 이름을 메시아의 족보에 기록하셨을까요?
역대상 20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어... 요압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갔으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더라."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사자 앞에서도 용감했던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도 떨지 않았던 다윗이, 봄날 오후의 나태함에는 무너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이 전쟁에서 지치는 순간이 위험한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 사탄은 문을 두드립니다.
다윗은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불러들였습니다. 밧세바는 임신했고, 다윗은 죄를숨기려 했습니다. 충성스러운 군인 우리야를 불러들여 집으로 보내려 했지만, 우리야는 전장에 있는 동료들을생각하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결국 그를 죽음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사무엘하 11장 27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나 다윗이 행한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비유로 말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어린 암양을빼앗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때 나단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 여섯 글자가 다윗의 세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그 회개가 시편 51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히브리어로 '창조하다'는 '바라'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쓰신 바로 그단어입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 오직 하나님만이 새 마음을 창조하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남았습니다.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첫 아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다윗은 이레 동안 금식하며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자, 다윗은 일어났습니다. 씻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었습니다.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다윗이 답했습니다. "이제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그를 다시 데려올 수 있겠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는 것.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하였고, 밧세바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이 솔로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여디디야 -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자' 라고 부르셨습니다. 죄의 자리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하나님이 사랑의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역대상 3장 5절을 보십시오. 밧세바의 아들들이 기록됩니다: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는 솔로몬을 통해 이어지고, 누가복음 3장 31절의 족보는 그 나단을 통해이어집니다. 밧세바의 두 아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죄로 시작된 그 관계를 단지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죄는 실재합니다. 결과는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 깊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폐허 위에 성전을 지으신다." 다윗의 삶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1장 6절은 수치를 숨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하나님은 그 수치의 자리에 은혜의 이름을 써 넣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그 복음의 완성입니다. 그분은 완벽한 사람들의 족보를 통해 오신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의 족보를 통해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신 목적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기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우리의 모든 수치를 담당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디디야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의 가장 큰 실패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그 자리를 외면하지않으십니다. 시편 51편 17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이여, 상한 심령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부서진 마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수치의 자리에서은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십니다.
당신의 실패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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